Cooper Union2010. 12. 8. 12:34
어제 첫 눈이 왔다. 모처럼 아침 9시 수업을 안 빠지기 위해서 아침 8시 45분에 겨우 끼적끼적 일어나서 겨우 세수하고 머리를 간신히 감고 옷을 급히 입고 가방은 과감히 집에 놔두고 방을 나섰다. 어차피 수업에 가도 나는 필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 무거운 것을 짊어지면 키가 안 크기 때문에(?) 간편하게 코트만 걸쳐입고 학교에 갔다. 친구 노트가 훨씬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나는 수업을 자주 빠지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무슨 수업을 빠졌는지 기억하기 귀찮아서 그냥 수업을 가도 필기를 안 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복사한다.

학교 가는 길에 첫눈이 내렸다. 물론 첫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했던 짓눈깨비 수준이었지만. 예전처럼 첫눈이 왔다고 감동은 없다. 단지 학교에 갈 뿐. 학교에 가서 보나마나 또 배가 고파서 굶주린 곰 처럼 엎어져있겠지. 그러다가 쉬는시간이 오면 잽싸게 근처에 있는 빵집에 가서 빵과 커피를 집어오겠지. (물론 돈도 내야겠지.) 불행히도 사람은 곰이 아니어서 돈도 안내고 그냥 빵을 집었다가는 감옥에 가고 말 것이다. 산에 사는 곰들은 겨울이 되기 전에 배가 고프면 이따금씩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기도 하는데. 곰이 그런다고 감옥에 가는 일은 없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람이 곰보다 조금 더 불쌍하기도 하다. 동물원에 가면 사람들이 곰에게 빵을 던져주곤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빵을 공짜로 던져주는 일은 없다. 눈이 오니까 이제는 어디 구석진데 구멍을 파서 겨울잠이라도 자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가오는 파이널에 압박감만 받고 공부는 근처에도 안가는 그런 이상한(? 정말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 곰은 어디 구멍을 파서 잠을 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그랬다가는 학기가 끝난 후 무시무시한 성적 폭탄을 받겠지.

어제 저녁에는 아까 그 괴로운 아침 9시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가 해내야하는 프로젝트를 도와줬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온 아이인데 학년은 나와 같으나 쓸데없이 까다로운 학교 관게자들 덕분에 즐겁게(?) 몇몇 1학년 수업을 듣고있다. Solidworks를 해야하는데 사실상 거의 다 내가 해주었다. 그 친구란 아이는 글씨가 좀 못났긴 했지만 어쨌든 그 지긋지긋한 아침 9시 수업을 꼬박꼬박가는 유일한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에 글씨를 그다지 탓할 입장은 못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항상 탓하기는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도와준 보답(?)으로 자기가 손으로 직접 쓴 그 필기를 나를 위해서 복사를 해서 나에게 가져다주는 웃지못할 일이 일어났다. 프로젝트를 도와주는데도 대충 1시간이 걸렸고 복사를 하는 것도 대충 1시간이 걸렸으니 이걸 쌤쌤이라고 하는건가... 만약 그 친구가 직접 프로젝트를 했다면 적어도 1시간보다는 더 걸렸을테니 그래도 내가 도와준게 맞겠지? 라고 스스로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노력해본다.

그 후에는 Advanced Thermodynamics 프로젝트로 인해서 머리털이 다 빠지고 있는 다른 친구를 도와주었다. 물론 내가 한 일이라고는 Mathematica를 돌려주는 일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친구와 나 둘다 머리털만 잔뜩 빠지고 별로 해결한게 없었다. 나는 안그래도 부족한 머리털만 더 빠지고 원래 공부하려고 했던 유기화학 공부를 그 다음날로 미뤄야했다. 물론 그 다음날인 오늘도 유기화학 공부는 요원하기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유기화학 공부를 해도 머리털이 빠지니 이런 것도 쌤쌤이라고 해야겠다. 유기화학 공부를 열심해서 새로운 머리털 재생 방법을 찾아내서 사라진 머리털 개수 만큼 다시 머리털을 찾아올 방법은 없을까. 유기화학을 공부하다가 대머리가 되어버린다면 차라리 가발을 쓰는게 빠를거 같긴 하지만. 아니면 유기화학의 힘으로 가발을 녹일까?

첫눈이 오면 그 중 일부는 내 머리털 위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 중 일부는 물이 되어 내 머리털에 새며들겠지.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내 몸속으로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 물은 내 온 몸을 지나다가 언젠가는 내 몸을 탈출하겠지. 마치 시도때도 없이 내 몸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머리털처럼. 마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감옥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죄수들처럼... 첫 눈의 압박감 처럼 학기말의 압박감 또한 서서히 찾아오고있다. 그러다가 둘째 눈이 오고 셋째 눈이 오고 내 머리털 또한 일부는 도망을 치고 일부는 새로 자라나서 내 몸뚱아리에 붙어있겠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또한 왜 이런 헛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게 첫눈의 효과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만 유기화학의 효과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땡스기빙때 신나게 마신 몇 십병의 맥주의 효과가 이제 나타나는 것인가. 아니면 이걸 머리털 효과라고 해야하는 건가. 첫눈과 머리털의 상관관계를 연구해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세운 가설에 의하면 첫눈의 무게와 빠져버린 머리털의 무게가 대략 비슷하다고 한다. 이 가설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유기화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첫눈을 짓눈깨비가 아닌 폭설로 만들어버리다가는 곤란하겠는걸...
Posted by pajamaboy